
사랑 이야기인데 설레기보다 아릿한 영화가 있습니다. 어긋난 타이밍 하나가 두 사람의 인생을 각자 다른 방향으로 밀어버리는 이야기, 〈가을의 마티네〉입니다.
기본정보
- 제목: 가을의 마티네(원제 マチネの終わりに, 영문 At the End of the Matinee)
- 개봉: 2019년 11월 1일 일본 개봉, 전국 322개관
- 감독: 니시타니 히로시
- 원작: 히라노 게이치로의 동명 소설
- 주연: 후쿠야마 마사하루, 이시다 유리코
- 러닝타임: 123분
- 장르: 멜로, 로맨스, 드라마
- 일본 흥행: 약 9억 엔
- OTT: 티빙에서 시청 가능
제목의 '마티네(matinée)'는 낮에 열리는 공연을 뜻하는 프랑스어입니다. 원제를 직역하면 '마티네의 끝에서'인데, 국내에서는 〈가을의 마티네〉로 소개됐습니다.
줄거리
마키노 사토시는 열여덟에 데뷔해 세계적 명성을 얻은 클래식 기타리스트입니다. 서른여덟이 된 지금, 그는 무대에서 손이 굳어버리는 슬럼프를 겪고 있습니다.
어느 날 공연이 끝난 뒤 그는 코미네 요코를 만납니다. 프랑스 통신사에서 일하는 마흔의 저널리스트, 일본인과 프랑스인 사이에서 태어난 여성입니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 몇 마디를 나눴을 뿐인데, 서로가 평생 기다려온 사람임을 직감합니다.
문제는 시기입니다. 요코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약혼자가 있고, 마키노에게도 그를 오래 지켜온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이메일과 전화로 조심스럽게 마음을 이어갑니다. 파리와 도쿄, 뉴욕을 오가며 각자의 일에 쫓기는 와중에도 서로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오해가 끼어듭니다. 그 어긋남 하나로 두 사람은 서로가 자신을 떠났다고 믿게 되고, 각자 다른 삶을 선택합니다. 그렇게 흘러간 몇 년의 세월이 영화의 후반부를 채웁니다.

관람포인트
첫째, 기타 선율입니다. 클래식 기타가 이야기 전체의 정서를 끌고 갑니다. 연주 장면 자체가 감정 표현이라, 음악에 관심 있다면 훨씬 깊게 몰입할 수 있습니다.
둘째, 어른의 연애입니다. 서른여덟과 마흔, 각자 지켜야 할 것이 있는 두 사람의 사랑이라 격정적이지 않습니다. 대신 한 문장을 쓰고 지우는 데 오래 걸리는 종류의 감정이 그려집니다.
셋째, 도시의 질감입니다. 도쿄, 파리, 뉴욕을 오가며 각 도시의 공기를 다르게 담아냅니다. 같은 사람이 다른 도시에서 다른 얼굴을 갖는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넷째, 과거를 다시 쓰는 구조입니다. 핵심 주제가 후반부에 드러나는데, 그 지점에서 앞서 본 장면들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배우 후쿠야마 마사하루와 대표작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1969년 일본 나가사키 출신으로, 배우와 싱어송라이터를 겸하는 인물입니다. 일본에서는 가수로서의 입지도 배우만큼 단단합니다.
- 〈갈릴레오〉 시리즈: 괴짜 물리학자 유가와 마나부 역으로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 그의 대표 캐릭터입니다.
- 〈용의자 X의 헌신〉(2008):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을 원작으로 한 갈릴레오 시리즈의 극장판.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 아이가 바뀐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를 연기해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습니다.
- 〈세 번째 살인〉(2017): 고레에다 감독과 다시 만난 법정 드라마.
- 〈료마전〉(2010): NHK 대하드라마 주연.
이 영화에서 그는 실제로 기타를 다루는 장면을 소화했고, 슬럼프에 빠진 연주자의 무력감을 절제된 표정으로 그려냈습니다.

배우 이시다 유리코와 대표작
이시다 유리코는 1969년생으로, 30년 넘게 일본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동해온 배우입니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분위기와 차분한 목소리가 그녀의 특징입니다.
-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2016): 이른바 '니게하지'로 불린 화제작. 그녀가 연기한 유리 역은 당시 일본에서 큰 공감을 얻었습니다.
- 〈모노노케 히메〉(1997):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 산의 목소리를 맡았습니다.
- 〈게드 전기〉(2006): 지브리 작품에서 테루 역 목소리 연기.
이 작품에서 그녀는 통역과 취재 현장을 오가는 저널리스트를 맡아, 강인함과 외로움을 동시에 지닌 인물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습니다.
니시타니 히로시 감독과 대표작
니시타니 히로시는 후지TV 출신 연출자로, 드라마와 영화를 함께 만들어온 감독입니다. 후쿠야마 마사하루와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온 사이입니다.
- 〈갈릴레오〉(2007): 후쿠야마 주연의 추리 드라마 시리즈.
- 〈용의자 X의 헌신〉(2008), 〈한여름의 방정식〉(2013): 갈릴레오 시리즈 극장판 두 편.
- 〈아말피: 여신의 보수〉(2009):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서스펜스.
- 〈히루가오〉: 불륜을 소재로 화제를 모은 드라마와 극장판.
세련된 화면 구성과 도시의 분위기를 살리는 연출이 강점으로 꼽히며, 이 작품에서도 도시 멜로의 톤을 안정적으로 유지합니다.
원작 소설
원작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마티네의 끝에서》입니다. 2015년 3월부터 2016년 1월까지 마이니치신문에 연재된 뒤 2016년 4월 단행본으로 출간됐고, 제2회 와타나베 준이치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어 있습니다.
소설은 400쪽을 넘는 분량으로 두 인물의 내면을 훨씬 촘촘하게 따라갑니다. 영화 123분에 담기지 못한 사유와 대화가 많아,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면 원작도 읽어볼 만합니다. 만화판과 오디오북으로도 제작됐습니다.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
히라노 게이치로는 1975년 일본 아이치현에서 태어나 교토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했습니다. 1999년 대학 재학 중 《일식》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아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개념은 '분인(分人)'입니다. 하나의 진짜 자아가 있는 게 아니라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여러 얼굴이 모두 자신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소설에서 두 주인공이 서로를 만났을 때만 드러나는 모습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도 이 관점과 이어집니다.
《나란 무엇인가》, 《한 남자》 등이 국내에 번역돼 있습니다.

촬영지
이야기는 도쿄, 파리, 뉴욕을 오갑니다. 주인공 마키노의 집은 도쿄 시부야구 요요기우에하라를 배경으로 하는데, 실제 촬영은 고도성장기에 지어진 오피스 빌딩에서 이뤄졌습니다. 미술감독은 소설의 모델이 된 실제 기타리스트의 집을 찾아가 참고했다고 밝혔습니다. 벽 전체를 청록색으로 칠하고 기타와 레코드를 늘어놓은 공간입니다.
흥미로운 건 파리 아파트입니다. 이 공간은 현지가 아니라 도쿄에 지은 세트였습니다. 헤링본 바닥과 프랑스식 주방 배치를 재현하고, 창밖 풍경은 파리에서 찍은 사진을 토대로 3미터 규모의 미니어처를 만들어 표현했습니다. 화면으로는 전혀 세트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글로벌한 무대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각 도시가 뿜어내는 다채로운 미학이 영화의 시각적 즐거움을 배가시킵니다.
- 파리 (Paris): 요코가 근무하는 곳이자 두 사람의 사랑이 깊어지는 도시입니다. 에펠탑이 보이는 거리와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 센강의 다리를 비추며 로맨스의 절정을 장식합니다.
- 도쿄 (Tokyo): 마키노의 음악적 고뇌와 일상이 머무는 곳으로, 도심의 야경과 클래식 홀의 정갈한 미장센이 교차합니다.
- 뉴욕 (New York): 영화의 하이라이트와 결말을 장식하는 장소입니다. 가을 낙엽이 가득한 센트럴파크의 풍경은 수채화 같은 쓸쓸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안겨주며 완벽한 엔딩 시퀀스를 완성합니다.
명대사
가장 많이 인용되는 대사는 시간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꿀 수 있는 것이 미래뿐이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미래가 늘 과거를 바꾸고 있다는 말, 바꿀 수 있다고도 하고 저절로 바뀌어버린다고도 할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릅니다.
같은 기억이라도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힌다는 뜻입니다. 이 영화의 제목과 결말을 한꺼번에 설명하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바꿀 수 있는 것은 미래뿐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입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과거를 바꾸고 있어요. 미래에 따라 과거의 의미는 변하기 마련이니까요." (마키노의 철학이자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대사)
나의 생각, 느낀점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붙들고 있었던 건 '타이밍'이라는 단어였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오해가 끼어들었을 뿐이고 누구도 악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어긋남 하나가 각자의 인생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갑니다. 저는 그게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가장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좋았던 건 이 영화가 재회를 보상처럼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흔한 멜로라면 지난 세월을 없는 것처럼 지우고 두 사람을 다시 붙여놓을 텐데, 이 작품은 그 사이에 흐른 시간을 지우지 않습니다. 각자 다른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의 무게를 안은 채로 마주 섭니다.
그래서 미래가 과거를 바꾼다는 그 대사가 결말에서 힘을 얻습니다. 어긋난 시간이 없어진 게 아니라, 지금의 두 사람이 그 시간의 의미를 다시 쓰는 것이니까요. 저는 이 결말이 해피엔딩인지 아닌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결말이라고는 생각합니다.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123분에 긴 세월과 세 도시를 담으려다 보니 중반부 감정선이 다소 생략된 느낌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왜 그렇게까지 서로에게 확신을 가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그 부분은 원작 소설이 훨씬 친절하게 채워줍니다.
조용한 가을밤, 기타 소리와 함께 천천히 보기 좋은 영화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OTT정리)
Q. 어디서 볼 수 있나요?
2026년 10월 기준, 티빙, 웨이브, 쿠팡플레이에서 시청가능합니다.
Q. 원작 소설을 먼저 읽어야 하나요?
영화만 봐도 이해에 무리는 없습니다. 다만 인물의 내면을 더 알고 싶다면 원작을 함께 읽는 쪽을 추천합니다.
Q.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직접 기타를 연주했나요?
실제 연주 장면을 소화하기 위해 상당한 연습을 거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음악을 전면에 둔 작품이라 이 부분에 공을 들였습니다.
Q. 결말이 명확한가요?
열린 해석을 남기는 쪽에 가깝습니다. 시원한 결말을 기대하면 아쉬울 수 있습니다.
Q. 한국에서 정식 개봉했나요?
국내에는 〈가을의 마티네〉라는 제목으로 소개됐습니다. 제목이 원제와 달라 검색 시 혼동할 수 있으니 참고하세요.
Q. 영화 제목에 나오는 '마티네(Matinee)'의 뜻은 무엇인가요?
'마티네'는 프랑스어로 아침, 혹은 낮을 의미하는 'Matin'에서 유래한 단어로, 주로 극장이나 공연장 등에서 낮 시간에 열리는 공연을 뜻합니다.
극 중에서 마키노의 마티네(낮 공연)가 끝난 후 두 사람이 재회하게 되는 시간적 배경이자, 중년에 접어들어 인생의 오후(마티네의 끝)를 맞이한 두 사람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아름다운 제목입니다.
Q. 영화 속 기타 연주곡 제목은 무엇이고, 실제로 존재하는 클래식 곡인가요?
극의 메인 테마로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곡의 제목은 '행복의 동전 (幸福の硬貨, Happiness Coins)'입니다.
영화를 위해 칸노 유고 음악 감독과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특별히 작업하여 탄생시킨 아름다운 오리지널 연주곡입니다.